인출 전략 백테스트 — 4% 룰과 순서 위험을 26년으로 확인

26년 백테스트에 매년 4% 인출을 얹어 다시 채점했다. 안 뺐을 때 미국주식에 밀리던 영구 포트폴리오가 인출을 얹으면 앞서고, 수익률 순서만 뒤집어도 미국주식 잔고는 214와 618로 2.9배 갈린다. 인출률 6%에서는 고갈 확률이 25%를 넘었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매매 시점을 추천하는 글이 아닙니다. 공개된 전략을 직접 백테스트해 본 학습 기록입니다.

📚 이 글은 전략 리뷰 실험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지금까지 돌려본 전략을 한눈에 비교한 표를 이 허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두 편의 마지막 문단이 공교롭게 같은 자리를 가리켰다. 물속에 있던 시간을 잰 글에서는 “물속에 5년 잠겨 있는 동안 생활비를 꺼내 쓰면 회복 자체가 달라지지 않나”로 끝냈고, 커버드콜 ETF를 뜯어본 글에서는 “분배금을 받는 것과 기초를 사놓고 매달 필요한 만큼 파는 것은 잔고가 얼마나 다를까”로 끝냈다.

둘 다 같은 가정을 건드린다. 지금까지 열일곱 번의 채점에서 나는 한 번 넣고 26년간 한 푼도 안 건드리는 사람만 시험해왔다. 실제로 돈이 필요한 시점은 대개 그 반대다. 그래서 이번엔 매달 돈을 빼면서 같은 26년을 다시 굴려봤다.

무엇을 바꿨나 — 곡선 위에 인출을 얹는다

전략 넷은 그대로다. 타이밍 계열인 가속 듀얼 모멘텀(ADM), 고정 분산의 영구 포트폴리오, 단순 분산인 미국+선진국 50:50, 미국주식 그냥 보유. 여기에 매달 인출을 얹었다.

📌 안전 인출률 (4% 룰)
은퇴 첫해에 자산의 4%를 꺼내 쓰고, 그다음부터는 그 금액을 물가만큼 올려가며 빼도 30년쯤은 잔고가 마르지 않는다는 경험칙. 미국 자료에 기반한 규칙이라 우리 조건에도 통하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한다. 이 글의 인출은 전부 물가에 연동한 실질 인출이다 — 미국 소비자물가는 이 26년 동안 89% 올랐다.

인출 방식은 두 가지를 나란히 봤다. 정액은 위의 4% 룰처럼 금액을 고정(물가 연동)하는 방식이라 생활이 안정적인 대신 잔고가 마를 수 있다. 정률은 매년 그때 잔고의 4%를 빼는 방식이라 절대 마르지 않는 대신 시장이 반토막 나면 생활비도 반토막 난다.

26년간 4%씩 빼 쓰면

네 전략에서 매년 4%씩 물가 연동 인출했을 때 26년간 남은 잔고를 로그 스케일로 그린 그래프. 옅은 선은 인출하지 않았을 때이며, 인출을 얹으면 영구 포트폴리오(238)가 미국주식(214)을 앞선다

옅은 선이 한 푼도 안 뺐을 때, 진한 선이 매년 4%씩(물가 연동) 뺐을 때다. 넷 다 26년을 버텼고, 그동안 실제로 꺼내 쓴 돈은 원금의 1.37배였다.

전략 연복리 MDD 안 뺐을 때 4% 빼면 정률 4%면
ADM (타이밍) 11.2% −24.4% 1,479 886 548
영구 포트폴리오 7.2% −17.0% 586 238 215
미국주식 9.2% −51.0% 939 214 347
미국+선진국 50:50 7.9% −54.0% 693 161 254

<small>시작 원금 100 기준. 표의 순서는 ‘4% 빼면’ 열 기준.</small>

굵은 열에서 순위가 하나 바뀐다. 안 뺐을 때는 미국주식(939)이 영구 포트폴리오(586)를 60% 앞서는데, 4%씩 빼 쓰면 영구(238)가 미국주식(214)을 앞선다. 연복리는 여전히 미국주식이 2%p 높은데도 그렇다.

원인은 뻔하다. 인출은 빠진 상태에서 팔게 만든다. 반토막 난 계좌에서 생활비를 빼면 같은 금액을 위해 두 배의 주식을 팔아야 하고, 그 주식은 반등에 참여하지 못한다. 낙폭이 깊은 전략일수록 이 벌금이 크다. 17편에서 “낙폭의 값어치는 사람이 견디느냐로 정해진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사람의 마음과 무관하게 산수로 값이 청구된다.

정률 방식은 그림이 또 다르다. 미국주식은 정률로 바꾸면 최종 잔고가 214에서 347로 늘지만, 그 대가로 실제 꺼내 쓴 돈이 133으로 줄었다(정액은 137). 2009년에는 생활비가 뚝 떨어졌다는 뜻이다. 정률은 파산을 없애는 게 아니라 파산 위험을 생활비 변동으로 바꿔치기한다.

순서만 뒤집었을 뿐인데 — 이 글의 심장

여기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26년치 월 수익률을 그대로 두고 순서만 거꾸로 재생한 것이다.

📌 수익률 순서 위험 (sequence of returns risk)
평균 수익률이 같아도 좋은 해와 나쁜 해가 오는 순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위험. 돈을 넣어두기만 하면 순서는 아무 상관이 없다(곱셈은 순서를 안 타니까). 그런데 빼 쓰기 시작하는 순간, 초반의 하락은 회복할 원금 자체를 깎아버린다.

수익률 순서 위험을 보여주는 그래프. 왼쪽은 미국주식에서 실제 순서와 역순으로 4% 인출했을 때 잔고 차이(214 대 618), 오른쪽은 네 전략의 26년 뒤 잔고 비교로 ADM과 영구 포트폴리오는 순서를 뒤집어도 잔고가 거의 같다
전략 안 뺐을 때 (실제/역순) 4% 뺐을 때 실제 4% 뺐을 때 역순
ADM (타이밍) 1,479 / 1,479 886 866
영구 포트폴리오 586 / 586 238 246
미국주식 939 / 939 214 618
미국+선진국 50:50 693 / 693 161 412

가운데 열을 먼저 보시면 좋겠다. 안 뺐을 때는 실제 순서든 역순이든 최종 잔고가 소수점까지 똑같다. 통제가 제대로 걸렸다는 확인이자, 축적기에는 순서가 정말 아무 상관 없다는 증거다.

그런데 빼 쓰기 시작하면 미국주식은 214와 618로 2.9배 갈린다. 실제 역사에서 우리 시험지가 하필 2001년, 닷컴 붕괴 한복판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시작하자마자 −45%를 맞으며 생활비를 빼낸 계좌와, 좋은 시절을 먼저 겪고 나중에 위기를 맞은 계좌는 같은 수익률을 겪고도 결과가 세 배 다르다.

더 눈에 걸리는 건 위의 두 줄이다. ADM(886 → 866)과 영구(238 → 246)는 순서를 뒤집어도 잔고가 거의 안 변한다. 방어형 전략의 값어치가 여기서 새로 드러난다. 수익률을 몇 %p 더 벌어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언제 은퇴하는지를 덜 묻는다는 것이다. 운의 크기를 재던 글에서 영구 포트폴리오가 “언제 시작했느냐를 거의 묻지 않는 전략”이었는데, 인출을 얹으니 그 성질이 훨씬 크게 값을 한다.

얼마까지 빼도 되나

실제 역사 한 벌로는 표본이 하나뿐이라, 15편에서 쓴 방식으로 ‘있었을 법한 26년’ 1,000벌을 지어 인출률을 3~6%로 바꿔가며 고갈 확률을 냈다.

인출률 3~6%와 네 전략을 격자로 놓고 대체 역사 1,000벌에서 잔고가 마를 확률을 표시한 히트맵. 4% 인출에서 ADM과 영구 포트폴리오는 0.4%, 미국+선진국 50:50은 11.8%이고, 6% 인출에서는 모두 7~33%로 올라간다
  • 4%는 대체로 안전했다. ADM·영구는 고갈 확률 0.4%, 미국주식 6.6%. 다만 어중간한 50:50은 11.8% — 여덟 번에 한 번은 26년을 못 버틴다.
  • 5%부터 갈린다. 영구 5.4% vs 미국주식 14.0%. 실제 역사에서도 5% 인출 시 미국주식은 26년 뒤 33, 50:50은 28만 남았다(사실상 소진). 6%에서는 둘 다 실제로 고갈됐다(각각 2018년 7월, 2020년 3월).
  • 그런데 6% 칸에서는 순서가 또 바뀐다. 영구 24.5%로 미국주식 24.8%와 거의 같아진다. 인출률이 높아지면 안정성만으로는 못 버티고 수익률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낮은 인출률에서는 낙폭이, 높은 인출률에서는 수익률이 결정한다.

ADM이 전 구간에서 가장 안전해 보이지만, 이 표에는 세금이 없다는 걸 반드시 같이 봐야 한다. 세금을 물려본 글에서 ADM의 연 11.3%는 세후 7.8%로 깎였다. 매매가 잦은 전략의 성적표는 항상 세전이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

분배금으로 사는 것과 팔아서 사는 것

커버드콜 글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매달 분배금을 받아 쓰는 것과, 기초 지수를 사놓고 필요한 만큼 파는 것은 다른가.

연복리 안 뺐을 때 4% 빼면 26년간 꺼내 쓴 돈
커버드콜 QYLD 8.4% 274 169 57.8
기초 QQQ 19.5% 925 705 57.8

<small>2013년 12월~2026년 6월, 달러 기준, 분배금 재투자 총수익. 같은 시장·같은 통화라 환율은 양쪽에 똑같이 곱해진다.</small>

꺼내 쓴 돈은 양쪽 다 57.8로 똑같이 맞췄다. 그런데 남은 잔고는 169와 705다. 분배율이 10%를 넘는 상품에서 4%만 꺼내 쓴 사람도 이렇게 된다. 세전 총수익 기준에서는 분배금으로 받든 팔아서 받든 산수가 같기 때문이다. 분배금은 원금 밖에서 따로 오는 돈이 아니라 내 계좌에서 나가는 돈이고, 통장에 ‘분배금’이라고 찍히느냐 ‘매도’라고 찍히느냐만 다르다.

오히려 실전에서는 필요보다 많이 분배받는 쪽이 불리하다. 8%를 다시 넣으려 해도 이미 세금이 떼인 뒤이기 때문이다(국내 계좌 기준 배당소득세 15.4%). 8편에서 확인한 “몇 번 파느냐보다 한 번에 얼마를 실현하느냐”가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계

이 글의 숫자는 전부 세전이다. 실제 인출에는 세금이, 국내 계좌라면 건강보험료 같은 것도 따라붙는다(그래서 연금계좌가 인출기에 특히 중요해진다). 자산은 실제 매매 상품이 아닌 인덱스펀드 프록시이고, 편도 0.10% 비용만 반영했다.

시작 시점이 결과를 크게 좌우한다. 이 26년은 하필 닷컴 붕괴 직전에서 시작하는데, 순서를 뒤집은 실험이 바로 그 사실을 드러낸다. “미국주식으로 4% 인출하면 26년 뒤 214가 남는다”는 문장은 이 시작점에서만 참이다. 대체 역사 1,000벌은 이 26년의 조각을 다시 배열한 것이라 상자에 없는 재료(예: 장기 침체)는 나오지 않고, 물가는 계산을 단순화하려 평균 상승률로 넣었다. QQQ의 12.5년은 기술주 역사적 강세장이라 커버드콜과의 격차가 과장돼 보일 수 있다는 점도 그 글에서 적어둔 대로다.

정리하며

  • 빼 쓰기 시작하면 채점표가 달라진다. 안 뺐을 때 미국주식(939)에 밀리던 영구 포트폴리오(586)가, 4%씩 빼면 214 대 238로 앞선다.
  • 인출은 낙폭에 산수로 벌금을 매긴다. 빠진 상태에서 팔면 반등에 실을 원금이 줄기 때문이다.
  • 쌓기만 하면 순서는 아무 상관이 없다(역순 재생해도 최종 잔고가 소수점까지 같다). 빼 쓰는 순간 미국주식은 순서에 따라 214와 618로 2.9배 갈린다.
  • 방어형 전략의 진짜 값어치는 여기서 드러난다. ADM·영구는 순서를 뒤집어도 잔고가 그대로다 — 내가 언제 은퇴하는지를 덜 묻는 전략이다.
  • 4% 인출은 대체로 안전했지만(고갈 확률 0.4~6.6%), 어중간한 50:50은 11.8%였다. 5%부터 갈리고, 6%에서는 안정성이 아니라 수익률이 결정한다.
  • 분배금으로 받든 팔아서 받든 세전 산수는 같다. QYLD와 QQQ에서 같은 4%를 꺼내니 잔고는 169와 705였다.

인출기의 위험은 축적기의 위험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축적기에는 낙폭이 ‘견딜 수 있느냐’의 문제였는데, 인출기에는 되돌릴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된다.

그러고 보니

정액과 정률 사이에 뭔가 더 있을 것 같다. 정액은 잔고가 마를 수 있고 정률은 생활비가 출렁이는데, 실제 사람은 “평소엔 정액대로 쓰다가 계좌가 많이 줄면 조금 덜 쓰고, 많이 불면 조금 더 쓰는” 쪽에 가깝지 않나. 그 중간 규칙을 넣으면 고갈 확률과 생활비 변동이 각각 얼마나 움직일지 궁금해졌다. 언젠가 들여다보고 싶다.

※ 이 글은 개인의 학습 과정을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투자 권유나 자문이 아닙니다. 백테스트는 과거 데이터에 근거한 것이며 미래 성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steady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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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아니라 데이터와 규칙으로 투자에 접근해보려는 사람입니다. 투자 전문가는 아니고 배우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시중에 알려진 공개 전략을 직접 코드로 백테스트해보고, 나온 숫자를 좋든 나쁘든 그대로 기록합니다. 특히 결과가 좋게 나올수록 한 번 더 의심하려 합니다. 이 블로그가 돌아가는 서버도 직접 구축해 운영하고 있어, 투자 이야기와 함께 서버·개발 이야기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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