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매매 시점을 추천하는 글이 아닙니다. 공개된 전략을 직접 백테스트해 본 학습 기록입니다.
📚 이 글은 전략 리뷰 실험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지금까지 돌려본 전략을 한눈에 비교한 표를 이 허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MDD(최대낙폭)라는 숫자 자체를 시험대에 올렸다. 거기서 가장 마음에 걸린 대목은 측정 주기 얘기가 아니라 마지막 항목이었다. MDD는 골짜기의 깊이만 재고 길이는 재지 않는다. 미국주식은 더 얕은 닷컴에서 더 깊은 금융위기보다 오래 물속에 있었다.
그때는 자산 하나 안에서 확인한 것이었다. 그러면 전략들끼리 세우면 어떻게 될까. 나는 스무 편이 넘도록 “이 전략은 MDD가 −24%라 −51%짜리보다 견딜 만하다”는 식으로 말해왔는데, 그게 깊이 한 축만 보고 한 말이었다면 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엔 전략도 코드도 손대지 않고 채점 항목만 바꿔봤다.
무엇을 바꿨나 — 깊이 대신 길이
전략 넷은 세금·행동·운·통화 편에서 쓰던 그 넷 그대로다. 타이밍 계열인 가속 듀얼 모멘텀(ADM), 고정 분산의 챔피언 영구 포트폴리오, 단순 분산인 미국+선진국 50:50, 미국주식 그냥 보유.
📌 물속 기간 (time under water)
전고점을 찍은 뒤 그 고점을 다시 되찾을 때까지의 기간. 계좌에 찍힌 숫자가 ‘내 최고 기록’보다 낮은 상태로 지낸 시간이다. MDD가 “얼마나 깊이 빠졌나”라면 이건 “얼마나 오래 잠겨 있었나”다. 물이 아무리 얕아도 못 나오면 오래 젖어 있게 된다.
여기에 두 잣대를 더 얹었다. 26년 중 물속이었던 비율, 한 번 빠져 되찾기까지 걸린 최장 기간. 그리고 깊이와 길이를 한 숫자로 합치는 표준 지표도 함께 계산했다.
📌 울처 지수 (Ulcer Index) · 마틴 비율
울처 지수는 매 시점 낙폭을 제곱해 평균 낸 뒤 제곱근을 씌운 값이다. 같은 −30%라도 한 달 만에 회복하면 작고, 5년을 끌면 크다. 깊이와 길이를 같이 세는 셈이라 이름도 ‘위궤양 지수’다. 마틴 비율은 CAGR ÷ 울처 지수 — 샤프 지수가 오르내림 전부를 위험으로 세는 것과 달리, 전고점 아래로 내려가 있는 것만 위험으로 센다.
26년 중 얼마나 물속이었나

네 칸 모두 같은 26년이다. 위 두 칸(ADM·영구)은 골이 얕고, 아래 두 칸(50:50·미국주식)은 깊다. 그런데 색이 칠해진 면적을 보면 위 칸도 만만치 않게 빽빽하다. 얕은 물에 계속 잠겨 있는 모양이다.
| 전략 | 연복리 | MDD | 샤프 | 26년 중 물속 | 최장 물속 | 울처 지수 | 마틴 비율 |
|---|---|---|---|---|---|---|---|
| ADM (타이밍) | 11.2% | −24.4% | 0.97 | 65.6% | 31개월 | 7.11 | 1.58 |
| 영구 포트폴리오 | 7.2% | −17.0% | 1.03 | 58.0% | 27개월 | 3.71 | 1.95 |
| 미국+선진국 50:50 | 7.9% | −54.0% | 0.57 | 69.5% | 66개월 | 14.14 | 0.56 |
| 미국주식 | 9.2% | −51.0% | 0.67 | 64.6% | 58개월 | 12.65 | 0.73 |
굵게 칠한 네 칸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ADM의 MDD(−24.4%)는 미국주식(−51.0%)의 절반도 안 되는데, 물속에 있던 시간은 오히려 더 길다(65.6% vs 64.6%). 1%p 차이니 사실상 동률이라 부르는 게 맞겠지만, 그래도 “절반의 낙폭”과 “같은 물속 시간”이 한 전략에 같이 붙어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이유는 곡선 모양에 있다. 타이밍 전략은 신호가 오락가락할 때마다 조금씩 깎인다. 26년 동안 −10%를 넘긴 사건이 여섯 번, 그 사건들의 평균 물속 기간이 22개월이었다. 크게 다치진 않는데 자잘하게 계속 젖어 있다. 큰 파도를 피하는 대신 잔물결에 늘 발을 담그고 있는 셈이다.
잣대를 바꾸면 등수가 바뀌는가 — 딱 한 자리

솔직히 등수가 요란하게 뒤집히길 기대했다. 그런데 바뀐 건 가운데 한 자리뿐이다. 영구가 양쪽 다 1등, 50:50이 양쪽 다 꼴찌고, 2·3등 자리에서 ADM과 미국주식이 엇갈린다.
바뀐 게 등수가 아니라 격차라는 점이 더 흥미롭다. 위험 대비 수익을 샤프로 재면 영구(1.03)와 ADM(0.97)은 거의 붙어 있다. 그런데 마틴 비율로 재면 1.95 대 1.58로 벌어진다. 오르내림 전체가 아니라 ‘전고점 아래 있던 시간’만 위험으로 세면, 잔물결에 계속 젖어 있는 쪽이 그만큼 더 감점되기 때문이다.
낙폭 사건을 하나씩 끊어 보면 MDD가 놓치는 게 뭔지도 분명해진다. ADM에서 가장 깊은 사건은 2022년(−24.4%, 물속 30개월)이지만, 가장 오래 잠겨 있던 사건은 2018년의 −15.3%짜리였다(31개월). 낙폭은 9%p나 얕은데 회복은 한 달 더 걸렸다. 2018년 말 조정에서 못 빠져나온 채로 코로나를 맞았기 때문이다. MDD 표에는 절대 안 나오는 사건이다.
사람을 다시 넣어보면 — 인내심을 시간으로 재면
여기까지는 숫자 얘기다. 행동 갭을 다룬 편에서 배운 대로, 잣대의 값어치는 “사람이 그 지점에서 그만두느냐”로 정해진다. 그때 나는 사람을 깊이로 모델링했다. 계좌가 −20% 빠지면 판다.
그래서 방아쇠만 바꿔 다시 돌려봤다. “계좌가 24개월 연속 전고점 아래면 지쳐서 포기한다.” 파는 방식도, 돌아오는 방식도(전고점 회복을 확인하고 재진입) 그 편과 똑같이 뒀다. 바뀐 건 방아쇠 하나뿐이다.
| 전략 | 원칙 고수 | 깊이 −20%면 포기 | 시간 24개월이면 포기 | 시간 임계일 때 장외 |
|---|---|---|---|---|
| ADM (타이밍) | 11.2% | 10.1% (−1.1%p) | 10.3% (−0.9%p) | 13개월 |
| 영구 포트폴리오 | 7.2% | 7.2% (0.0%p) | 7.1% (−0.1%p) | 3개월 |
| 미국+선진국 50:50 | 7.9% | 3.7% (−4.2%p) | 5.3% (−2.6%p) | 60개월 |
| 미국주식 | 9.2% | 6.7% (−2.5%p) | 6.9% (−2.3%p) | 53개월 |
영구 포트폴리오는 그 편에서 한 번도 팔지 않은 유일한 전략이었다. 낙폭이 −17%라 −20% 임계에 아예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으로 재면 판다. 2022년에 얕게 빠진 뒤 전고점을 되찾는 데 27개월이 걸렸고, 24개월째에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이다. 손해는 −0.1%p로 작지만, “이 전략은 사람을 안 흔든다”는 결론에 붙어 있던 무조건이 떨어져 나갔다.

임계를 12개월(1년)까지 좁히면 순서가 완전히 달라진다. 파란 막대, 즉 ADM이 −3.5%p로 넷 중 가장 크게 다친다. 깊이로 재면 −1.1%p로 가장 안전한 축이던 그 전략이다. 이유는 앞에서 본 그대로다. 크게 안 빠지는 대신 자주, 오래 젖어 있으니 ‘1년 물속’이라는 방아쇠에 계속 걸린다. 인내심이 짧은 사람에게는 타이밍 전략이 가장 비싸다.
파는 시점의 성격도 달랐다. 깊이로 지친 사람은 폭락 한복판에서 판다. 시간으로 지친 사람은 2003년 4월, 2009년 10월에 팔았다 — 둘 다 바닥을 지나 반등이 한창이던 때다. 견디다 견디다 “이제 그만하자” 하고 나가는 자리가 하필 회복 구간의 초입인 것이다. 무릎에 파는 것과는 또 다른 모양의 실수다.
한계 — 이 숫자들도 표본 하나다
물속 기간은 깊이보다 안정적인 잣대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26년에서 한 번 관측된 값이다. 운의 크기를 재던 도구로 ‘있었을 법한 26년’ 1,000벌을 지어 최장 물속을 다시 재봤다.
| 전략 | 실제 | 대체 역사 중앙값 | 상위 5% | 실제보다 길었을 확률 |
|---|---|---|---|---|
| ADM | 31개월 | 40개월 | 83개월 | 72.2% |
| 영구 포트폴리오 | 27개월 | 32개월 | 66개월 | 63.6% |
| 미국주식 | 58개월 | 59개월 | 157개월 | 50.9% |
ADM이 겪은 31개월은 운이 좋았던 축이다. 순서를 바꿔 다시 지은 역사의 72%에서 더 오래 잠겨 있었고, 나쁜 쪽 5%에서는 83개월(약 7년)이었다. 미국주식은 최악의 경우 157개월, 13년이 넘는다. “이 전략은 이만큼만 참으면 됩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나머지 한계도 적어둔다. 곡선은 월말 관측이라 깊이 지표(MDD·울처)는 측정 주기의 함정을 그대로 안고 있다(물속 기간은 그보다 덜 민감하다 — 하루 스친 회복은 어차피 사건을 끊지 못한다). 금 데이터 때문에 시작이 2001년 2월이라 그 앞의 닷컴 고점이 빠져 있고, 그래서 미국주식의 닷컴 물속 기간이 MDD 편의 숫자(75개월)보다 짧게(43개월) 나온다. 임계를 바꾼 표에서 18개월이 12개월보다 나쁜 칸도 있다(미국주식 −3.3 vs −2.7) — 임계를 조금 옮기면 파는 자리가 우연히 더 나쁜 시점으로 밀리기 때문이라, 숫자를 외우지 말고 방향만 가져가는 게 맞다. 자산은 실제 매매 상품이 아니라 인덱스펀드 프록시이고, 편도 0.10% 비용만 반영했으며 세금은 넣지 않았다.
정리하며
- 잣대를 깊이에서 길이로 바꿔도 등수는 거의 그대로였다. 영구가 1등, 어중간한 50:50이 꼴찌인 구도는 안 흔들린다.
- 대신 격차가 달라진다. 샤프로는 붙어 있던 영구와 ADM이 마틴 비율로는 1.95 대 1.58로 벌어진다.
- MDD가 절반이라고 물속 시간이 절반은 아니다. ADM은 낙폭이 미국주식의 절반인데 물속 비율은 같았다. 크게 다치지 않는 대신 자잘하게 계속 젖어 있는 곡선이다.
- MDD 사건이 가장 오래 걸리는 사건도 아니다. ADM의 최장 물속은 −24.4%짜리가 아니라 −15.3%짜리(31개월)였다.
- 사람을 시간으로 모델링하면 깊이로는 무결점이던 영구도 판다. 그리고 인내심이 1년이면 가장 크게 다치는 건 타이밍 전략이다(−3.5%p).
- 시간에 지쳐 파는 사람은 바닥이 아니라 반등이 시작된 뒤에 나간다.
MDD를 버리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 숫자는 “얼마나 아플까”만 알려준다. 실제로 그만두게 만드는 건 아픔의 크기만이 아니라 아픔이 얼마나 오래 가는가이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 전략 표에 물속 비율 한 칸을 더 붙여두려 한다.
그러고 보니
물속 기간을 세면서 계속 걸리던 게 있다. 이 계산은 전부 돈을 넣어두고 건드리지 않는 사람 기준이다. 그런데 물속에 5년 잠겨 있는 동안 생활비를 꺼내 쓴다면, 회복은 회복대로 늦어지고 팔아야 하는 주식 수는 늘어난다. 같은 −50%라도 넣어두기만 한 사람과 매달 빼 쓰는 사람에게 전혀 다른 사건일 것이다. 매달 필요한 만큼 파는 사람의 곡선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졌다. 언젠가 들여다보고 싶다.
※ 이 글은 개인의 학습 과정을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투자 권유나 자문이 아닙니다. 백테스트는 과거 데이터에 근거한 것이며 미래 성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