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매매 시점을 추천하는 글이 아닙니다. 공개된 자산배분 규칙을 직접 백테스트해보고, 그 결과를 정직하게 기록하는 학습 노트입니다.
📚 이 글은 전략 리뷰 실험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지금까지 돌려본 전략을 한눈에 비교한 표를 이 허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은퇴가 가까울수록 주식을 줄이라는 말
인출 전략을 다룬 글에서 확인한 것이 하나 있다. 빼 쓰기 시작하면 얼마나 벌었느냐만큼 언제 벌었느냐가 잔고를 가른다는 사실이다. 같은 26년의 수익률을 순서만 뒤집어 재생했더니, 안 빼 쓸 때는 최종값이 소수점까지 같은데 4%씩 빼 쓰면 214와 618로 2.9배가 갈렸다.
그 위험을 인출 규칙 쪽에서 막아본 것이 가드레일이었다. 남은 것은 배분 쪽이다. 그리고 배분 쪽 처방은 아주 유명하다. 나이가 들수록 주식을 줄여라. 퇴직연금의 TDF가 이 구조로 굴러가고, “100에서 나이를 뺀 만큼 주식”이라는 오래된 어림셈도 같은 말이다.
정말 그런지 26년치로 재봤다.
글라이드 패스란 무엇인가
📌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산 비중을 미리 정해둔 일정대로 옮겨가는 방식. 비행기가 활주로로 완만하게 내려앉는 경로에서 온 말이다. 시장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달력만 보고 움직인다.
이 시리즈가 지금까지 다룬 전략은 둘 중 하나였다. 비중이 고정돼 있거나(올웨더·영구 포트폴리오), 시장을 보고 비중을 바꾸거나(듀얼 모멘텀·카나리아). 글라이드 패스는 셋째다. 시장을 보지 않고 달력만 본다. 미래를 훔쳐볼 여지가 아예 없다는 점에서는 지금까지 다룬 것 중 가장 정직한 규칙이다.
평균 주식 비중을 똑같이 40%로 맞췄다
“주식을 줄이는 게 낫다”를 그냥 재면 반칙이다. 주식을 덜 담으면 덜 흔들리는 건 당연해서, 결과가 줄인 덕인지 그냥 적게 담은 덕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래서 이렇게 짰다.
| 배분 | 주식 비중 | 평균 주식 비중 | 역할 |
|---|---|---|---|
| 고정 60/40 | 60% 유지 | 60% | 익숙한 기준선 |
| 고정 40/60 | 40% 유지 | 40% | 통제군 |
| 하락형 | 60% → 20% | 40% | 통념(줄여라) |
| 상승형 | 20% → 60% | 40% | 반대(늘려라) |
하락형과 상승형은 26년에 걸쳐 정반대로 움직이지만 평균 주식 비중이 똑같이 40%다. 고정 40/60을 그 옆에 세우면 ‘얼마나 담았나’가 지워지고 ‘언제 담았나’만 남는다.
미국주식과 미국종합채권 둘만 썼다. 2000년 8월부터 2026년 6월까지 25.8년, 매달 되돌린다. 인출은 첫해에 원금의 4%를 빼고 그 금액을 물가만큼 올려가는 표준형이다(이 26년 미국 물가는 +92.6%였다).

26년을 빼 쓰며 살아본 결과
| 배분 | CAGR(%) | MDD(%) | 샤프 | 물속 비율(%) | 안 빼면 최종 | 4% 빼면 최종 |
|---|---|---|---|---|---|---|
| 고정 60/40 | 6.7 | -32.6 | 0.73 | 61.1 | 528 | 85.0 |
| 고정 40/60(통제군) | 5.7 | -21.3 | 0.85 | 57.9 | 422 | 85.7 |
| 하락형 60→20 | 4.6 | -25.8 | 0.67 | 64.0 | 322 | 33.7 |
| 상승형 20→60 | 6.8 | -19.6 | 0.97 | 52.1 | 550 | 157.2 |
네 배분 모두 26년간 꺼내 쓴 돈은 141.8로 같다(아무도 고갈되지 않았다). 그런데 남은 잔고가 33.7과 157.2로 4.7배 갈렸다. 평균 주식 비중이 같은 두 규칙인데도 그렇다.
통념 쪽인 하락형은 통제군(85.7)의 0.39배, 반대인 상승형은 1.83배다. 더 뼈아픈 건 하락형이 주식을 60% 내내 들고 있던 고정 60/40(85.0)보다도 훨씬 나빴다는 점이다. 위험을 줄이려던 규칙이 잔고를 가장 많이 깎았다.
참고로 고정 60/40의 CAGR 6.7%·MDD -32.6%는 리밸런싱을 다룬 글에서 매달 되돌렸을 때 나온 값과 정확히 같다. 엔진이 같은 답을 내고 있다는 확인이다.
언제 무엇을 들고 있었나
차이가 어디서 났는지는 위기 구간을 보면 바로 드러난다.
| 위기 구간 | 하락형 | 상승형 | 그때 주식 비중(하락형/상승형) |
|---|---|---|---|
| 닷컴 2000-08~2002-09 | -22.5% | +3.1% | 60% / 20% |
| 금융위기 2007-10~2009-02 | -25.8% | -16.6% | 49% / 31% |
| 코로나 2020-01~2020-03 | -5.3% | -9.6% | 30% / 50% |
| 2022 물가 2021-12~2022-12 | -14.4% | -15.6% | 27% / 53% |
상승형이 이긴 이유는 실력이 아니다. 닷컴이 터질 때 주식을 20%밖에 안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락형은 정확히 그 반대로 60%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 때는 부호가 뒤집힌다 — 그때는 상승형이 주식을 50%까지 늘려둔 뒤라 더 아팠다.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 초반에 깎인 잔고에서 계속 빼 쓰면 어떻게 되는지, 실효 인출률을 따라가 봤다.
📌 실효 인출률
처음 정한 4%는 ‘시작 원금의 4%’다. 잔고가 줄어도 빼는 금액은 그대로이므로, 남은 잔고 대비 비율은 계속 올라간다. 이 값이 지금 내 계좌에 실제로 걸리는 부담이다.
| 배분 | 5년차 | 10년차 | 15년차 | 20년차 | 25년차 |
|---|---|---|---|---|---|
| 고정 60/40 | 5.5% | 7.7% | 7.4% | 7.1% | 9.0% |
| 고정 40/60(통제군) | 4.9% | 6.1% | 6.1% | 6.1% | 8.7% |
| 하락형 60→20 | 5.5% | 7.4% | 7.8% | 9.0% | 19.4% |
| 상승형 20→60 | 4.3% | 5.2% | 5.0% | 4.5% | 5.0% |
하락형이 마지막 5년에 무너지는 건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서가 아니다. 산수다. 25년차에는 남은 잔고의 19.4%를 해마다 빼 쓰고 있었다. 상승형은 26년 내내 5% 언저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가드레일이 끊으려던 나선이 바로 이것이고, 하락형은 5년 만에 이미 난간(4.8%)을 넘어서 있었다.
반전: 이건 실력이 아니라 순서에 건 베팅이었다
여기서 이 글의 진짜 실험을 했다. 같은 26년의 자산 수익률을 순서만 뒤집어 다시 겪게 한 것이다.

| 배분 | 안 뺐을 때 실제 | 안 뺐을 때 역순 | 순서 영향 | 4% 뺐을 때 실제 | 4% 뺐을 때 역순 |
|---|---|---|---|---|---|
| 고정 60/40 | 528.3 | 528.3 | 1.000배 | 85.0 | 261.6 |
| 고정 40/60(통제군) | 422.5 | 422.5 | 1.000배 | 85.7 | 158.5 |
| 하락형 60→20 | 321.8 | 550.6 | 1.711배 | 33.7 | 250.0 |
| 상승형 20→60 | 549.9 | 321.5 | 1.711배 | 157.2 | 90.4 |
고정 배분은 안 빼 쓰면 순서를 전혀 타지 않는다. 소수점까지 같다. 곱셈은 순서를 안 묻기 때문인데, CAGR을 뜯어본 글에서 확인한 성질이다.
그런데 글라이드는 인출이 없어도 1.711배가 갈린다. 비중이 달력을 따라 움직이니 매달 곱하는 수가 달라지고, 곱셈의 교환법칙이 더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한 줄이 이 글에서 새로 알아낸 것이다. 글라이드 패스는 배분 규칙이 아니라 순서에 거는 베팅이다.
거울처럼 맞아떨어지는 숫자가 그 증거다. 하락형을 역순 시장에서 굴린 결과(550.6)와 상승형을 실제 시장에서 굴린 결과(549.9)가 거의 같다. 반대쪽도 마찬가지다(321.5와 321.8). 시장의 순서를 뒤집는 것과 글라이드의 방향을 뒤집는 것은 같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상승형이 이긴 건 우리 26년이 ‘먼저 나쁘고 나중에 좋은’ 시험지였기 때문이다. 시작점이 하필 닷컴 꼭대기 언저리였다.
공정한 시험지에서 다시 재면
시험지가 한 장뿐이라는 게 문제라면, 운의 크기를 재본 글에서 쓴 방법이 있다. 26년을 1년짜리 토막으로 잘라 다시 섞은 대체 역사 1,000벌을 만들고, 네 배분이 같은 토막 순서를 겪게 했다.
| 배분 | 연 3% | 연 4% | 연 5% | 연 6% |
|---|---|---|---|---|
| 고정 60/40 | 0.8% | 6.6% | 22.8% | 47.0% |
| 고정 40/60(통제군) | 0.3% | 4.6% | 29.3% | 65.1% |
| 하락형 60→20 | 0.7% | 6.5% | 28.3% | 55.1% |
| 상승형 20→60 | 0.1% | 4.6% | 32.9% | 78.8% |
우리 26년에서 4.7배였던 압승이 거의 사라진다. 연 4%에서 고갈 확률은 4.6% 대 6.5%로 좁혀지고, 최종 잔고 중앙값은 오히려 하락형이 낫다(130.6 대 109.6). 상승형이 진짜로 지켜준 건 딱 하나, 최악의 경로다. 하위 5% 경로의 잔고가 상승형만 2.4로 남고 하락형·고정 60/40은 0이다.
그게 순서 위험 보험의 정확한 값어치다. 중앙값을 깎고 최악을 막는다.
그리고 연 5%를 넘기면 순위가 아예 뒤집힌다. 연 6%에서는 상승형이 78.8%로 가장 위험해진다. 낮은 인출률은 낙폭이, 높은 인출률은 수익률이 결정한다는 인출 편의 결론이 배분 쪽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많이 빼 쓸 사람에게는 초반을 지키는 것보다 굴러갈 힘이 더 급하다.
넣는 사람과 빼는 사람은 진폭이 다르다
같은 배분으로 이번엔 매달 넣는 사람을 굴려봤다.

| 배분 | 적립기 최종 | 통제군 대비 | 인출기 최종 | 통제군 대비 |
|---|---|---|---|---|
| 고정 40/60(통제군) | 237.5 | 1.00배 | 85.7 | 1.00배 |
| 하락형 60→20 | 203.3 | 0.86배 | 33.7 | 0.39배 |
| 상승형 20→60 | 277.0 | 1.17배 | 157.2 | 1.83배 |
적립기에도 같은 방향으로 갈리는데 폭이 훨씬 작다. 통제군 대비 ±14~17%인 것이 인출기에서는 -61%와 +83%로 벌어진다. 넣기만 하는 동안에는 초반 잔고가 작아서 순서가 덜 아프고, 빼 쓰기 시작하면 같은 베팅의 진폭이 커진다는 뜻이다.
한 가지 덧붙이면, 적립기 전체 1등은 셋 중 아무것도 아니고 주식을 계속 60% 들고 있던 고정 60/40이었다(312.7). 넣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순서 걱정보다 주식을 얼마나 담았느냐가 여전히 더 컸다.
직접 해보니, 그리고 한계
처음엔 “상승형이 이렇게 이긴다고?” 싶어 여러 번 되짚었다. 그런데 순서를 뒤집어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어느 쪽이 더 나은 규칙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은퇴한 뒤 26년이 어떤 모양일지에 미리 돈을 거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모양은 알 수 없다.
한계는 분명하다.
- 시작점이 하필 닷컴 꼭대기 언저리라 이 26년은 상승형에 크게 유리하게 기울어 있다. 대체 역사를 따로 돌린 이유가 그것이다.
- 대체 역사도 결국 이 26년의 조각을 다시 섞은 것이라 상자에 없던 사건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 주식·채권 둘만 썼고 일정도 직선이다. 실제 TDF는 자산군이 훨씬 많고 경로도 직선이 아니다. 발상만 가져온 축약형이다.
- 실제 상장 상품이 아니라 1980~19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덱스펀드를 대리 자산으로 썼다. 배당은 재투자, 매매비용은 편도 0.1%를 반영했고 세금은 반영하지 않았다. 인출액에 붙는 세금·건강보험료도 빠져 있다.
정리하며
- 평균 주식 비중을 40%로 똑같이 맞춰놓고 순서만 바꿨더니, 4% 인출 26년 뒤 잔고가 33.7과 157.2로 갈렸다.
- 그 차이는 실력이 아니었다. 고정 배분은 인출이 없으면 순서를 전혀 안 타는데(1.000배), 글라이드는 인출이 없어도 1.711배 갈린다. 글라이드 패스는 그 자체가 순서에 거는 베팅이다.
- 대체 역사 1,000벌에서는 그 우위가 거의 사라진다. 남는 것은 최악의 경로 방어 하나이고, 대신 중앙값을 내준다. 연 5%를 넘기면 순위가 뒤집힌다.
- 하락형이 마지막에 무너진 건 시장 사건이 아니라 산수였다. 25년차에 잔고의 19.4%를 빼 쓰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주식을 줄여라”가 틀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 조언이 지키려는 것이 초반 몇 년이라는 걸 이 26년이 분명히 보여줬다. 지켜야 할 곳을 알면, 26년 내내 비중을 옮기는 것 말고 다른 방법도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글라이드가 달력만 보고 움직이기 때문에 순서에 걸리는 것이라면, 달력 대신 잔고를 보고 옮기면 어떨까. 인출률이 계획을 벗어날 때 인출액을 조정하는 것이 가드레일이었는데, 같은 신호로 이번엔 비중을 조정하는 식이다. 그러면 순서를 맞히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결국 시장을 보는 일로 돌아가는 거라 또 다른 값을 치를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들여다보고 싶다.
※ 이 글은 개인의 학습 과정을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투자 권유나 자문이 아닙니다. 특정 상품이나 배분을 추천하지 않으며, 한 기간·한 구성에서 나온 결과일 뿐입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는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