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매매 시점을 추천하는 글이 아닙니다. 공개된 전략을 직접 백테스트해 본 학습 기록입니다.
📚 이 글은 전략 리뷰 실험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지금까지 돌려본 전략을 한눈에 비교한 표를 이 허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인출액에 난간을 달아보고 나니 찜찜한 게 하나 남았다. 가드레일은 “잔고가 많이 줄면 덜 쓰고 많이 불면 더 쓴다”는 규칙인데, 이 규칙은 잔고만 본다. 그런데 그 앞 인출 전략 편에서 매년 꺼내 쓴 돈은 물가에 연동해 늘려 잡았다. 나가는 돈에는 물가를 반영해놓고 남아 있는 돈에는 반영하지 않은, 반쪽짜리 채점이었다.
생각해보면 반쪽인 건 그 두 편만이 아니다. 이 시리즈가 열아홉 번 매긴 점수는 전부 명목 금액이었다. 잔고가 두 배가 돼도 물가가 두 배면 제자리인데, 그 사실이 채점표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가 쓰는 26년(2001년 2월~2026년 6월) 동안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176.0에서 332.6으로 +89.0%, 연 2.54%씩 올랐다. 그래서 물가를 빼고 다시 채점해봤다.
무엇을 바꿨나 — 곡선을 물가로 나누기만 했다
전략도 코드도 손대지 않았다. 이미 만들어진 곡선을 물가지수로 나누고 시작을 100으로 다시 맞춘 게 전부다. 원화 환산 편에서 곡선에 환율을 곱한 것과 정확히 같은 자리의 연산이다. 곱하느냐 나누느냐만 다르다.
📌 실질 수익률
명목 수익률에서 물가 상승분을 걷어낸 것. 잔고가 5% 늘었는데 물가가 3% 올랐다면 실제로 살 수 있는 건 2%쯤만 늘었다. “통장의 숫자”가 아니라 “장바구니”로 재는 수익률이다.
📌 소비자물가지수(CPI)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물건과 서비스 묶음의 값을 지수로 만든 것. 여기서는 미국 노동통계국이 내는 계절조정 지수(FRED 코드 CPIAUCSL)를 썼다.
비교 대상은 앞선 편들과 같은 네 전략에 올웨더를 하나 더 붙여 다섯으로 했다. 올웨더 편이 “‘모든 계절’이라면서 정작 인플레 계절인 2022년에 제일 아팠다”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 지적을 한 해가 아니라 26년치 고물가 구간 전체로 넓혀 다시 물어보려는 것이다.
26년 성적표를 물가로 나누면 — 같은 몫, 다른 비중

| 전략 | 명목 최종 | 실질 최종 | 명목 CAGR | 실질 CAGR | 깎인 몫 | 깎인 비중 | 명목 샤프 | 실질 샤프 |
|---|---|---|---|---|---|---|---|---|
| ADM (타이밍) | 1,479 | 783 | 11.2% | 8.5% | 2.7%p | 24% | 0.97 | 0.76 |
| 미국주식 (그냥보유) | 939 | 497 | 9.2% | 6.5% | 2.7%p | 29% | 0.67 | 0.50 |
| 미국+선진국 50:50 | 693 | 367 | 7.9% | 5.3% | 2.6%p | 33% | 0.57 | 0.41 |
| 영구 포트폴리오 | 575 | 310 | 7.2% | 4.6% | 2.6%p | 36% | 1.03 | 0.66 |
| 올웨더 | 462 | 246 | 6.3% | 3.6% | 2.7%p | 43% | 0.87 | 0.51 |
물가는 다섯 전략에서 똑같이 연 2.6~2.7%p를 떼어 갔다. 같은 나라의 같은 물가로 나눴으니 당연하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다. 같은 몫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혀 같지 않다. ADM은 벌어들인 것의 24%를 물가에 내줬는데 올웨더는 43%를 내줬다. 잔고로는 4.6배가 된 26년이 구매력으로는 2.5배가 된다.
순위도 하나 바뀐다. 명목 샤프 지수로는 영구 포트폴리오(1.03)가 ADM(0.97)을 앞섰는데, 실질로 재면 ADM(0.76)이 영구(0.66)를 앞선다.
이 역전은 우연이 아니라 산수다. 물가는 수익만 깎고 변동성은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월별 물가 변동은 연율 1.1%뿐이라, 영구의 변동성이 7.0%에서 7.2%로 미세하게 오르는 정도다). 그러면 샤프가 깎이는 폭은 물가 상승률 ÷ 변동성이 된다. 영구는 2.54÷7.0 = 0.36, ADM은 2.54÷11.7 = 0.22 — 실측 하락폭(0.37과 0.21)과 소수점까지 맞는다. 잔잔한 전략일수록 같은 물가에 효율이 더 크게 깎인다. 원화 환산 편에서 “환율은 흔들리는 자산에겐 완충재, 잔잔한 자산에겐 파도”라고 썼는데, 물가는 완충재 없이 파도이기만 한 셈이다.
물가는 골을 깊게 파지 않는다 — 대신 사다리를 올린다

뜻밖이었던 건 낙폭 쪽이다.
| 구간 | ADM | 미국주식 | 50:50 | 영구 | 올웨더 |
|---|---|---|---|---|---|
| 닷컴 (01–03) | −1.0%p | −1.3%p | −1.8%p | −0.3%p | −1.3%p |
| 금융위기 (07–09) | −3.0%p | −0.8%p | −0.8%p | −1.7%p | −1.7%p |
| 코로나 (2020) | +0.4%p | +0.3%p | +0.3%p | +0.4%p | +0.4%p |
| 인플레 (21–23) | −4.3%p | −3.9%p | −4.2%p | −5.9%p | −7.4%p |
*실질 낙폭에서 명목 낙폭을 뺀 값 — 물가가 낙폭에 매긴 ‘벌금’이다.*
금융위기에서 미국주식의 낙폭은 −51.0%에서 −51.8%로 0.8%p밖에 안 깊어졌다. 반대로 2021~23년에는 가장 얕게 빠졌던 영구가 −17.0%에서 −22.9%로, 올웨더가 −20.1%에서 −27.5%로 벌금을 크게 물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낙폭에 붙는 벌금은 고점에서 저점까지 걸린 기간의 물가 상승분이다. 미국주식은 16개월 만에 바닥을 쳤는데, 하필 그 구간 후반에 유가가 무너지며 물가가 오히려 떨어져(2008년 하반기 −3.5%) 16개월 순증이 +1.7%에 그쳤다. 코로나에서 실질 낙폭이 되레 얕아진 것도 같은 이유다. 반대로 영구와 올웨더는 26개월에 걸쳐 천천히 흘러내렸고, 그 26개월 동안 물가는 각각 14.9%와 12.8% 올랐다.
정작 큰 차이는 회복 쪽에 있다. 명목 곡선에서 전고점은 제자리에 멈춰 있지만, 실질 곡선에서 전고점은 물가만큼 매달 위로 올라간다. 헤엄쳐 올라오는 동안 사다리가 계속 올라가는 셈이다.
| 전략 | 명목 최장 물속 | 실질 최장 물속 |
|---|---|---|
| ADM | 31개월 | 35개월 |
| 미국주식 | 58개월 | 65개월 |
| 미국+선진국 50:50 | 66개월 | 73개월 |
| 영구 포트폴리오 | 27개월 | 58개월 |
| 올웨더 | 38개월 | 58개월 (아직 회복 못 함) |
낙폭 회복 기간 편에서 영구는 “가장 짧게 물속에 있던” 챔피언이었다. 그 27개월이 실질로는 58개월이 된다 — 2020년 8월 고점의 구매력을 되찾은 게 2025년 6월이다. 올웨더는 2021년 8월 고점을 2026년 6월 현재까지 못 되찾았다. 26년 중 물속에 있던 비율로 순위를 매기면, 명목 1등이던 영구(58.0%)가 실질에서는 3등(74.1%)으로 내려앉고 명목 4등이던 ADM(65.6%)이 1등(71.8%)으로 올라선다. 물가 한 겹에 지난 편의 결론이 뒤집힌 셈이다.
물가가 높던 95개월 — 무엇이 버텼나

이제 지난 편이 던진 질문 그대로, 물가가 높던 구간만 떼어 채점해봤다. 기준은 물가 상승률(전년비) 3% 이상 — 26년 중 95개월이 걸린다.
| 자산 | 물가 높던 달 | 물가 낮던 달 | 26년 전체 |
|---|---|---|---|
| 금 | +5.3% | +10.0% | +8.5% |
| 미국주식 | −0.5% | +9.8% | +6.5% |
| 중기국채 | −2.7% | +2.7% | +1.0% |
| 단기국채 | −2.7% | +1.1% | −0.1% |
| 종합채권 | −3.5% | +2.9% | +0.9% |
| 장기국채 | −3.8% | +3.7% | +1.3% |
| 선진국주식 | −5.1% | +8.1% | +3.8% |
| 원자재 | −7.1% | +0.3% | −2.1% |
*실질 연 수익률. 굵은 글씨는 각각 최고와 최저.*
여덟 자산군 가운데 물가 높던 달에 구매력을 지킨 건 금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금조차 물가 낮던 달에 두 배 가까이 잘 벌었다(+10.0% vs +5.3%). 금이 이 26년의 진짜 승자였던 건 맞지만(실질 연 8.5%로 미국주식보다 높다), 물가 때문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 인플레 헤지
물가가 오를 때 같이 올라 구매력을 지켜준다는 자산. 흔히 금·원자재·부동산이 꼽힌다.
그 인플레 헤지의 대표선수인 원자재가 물가 높던 구간에 가장 크게 잃었다(−7.1%). 물가가 오르는 속도가 붙던 달만 따로 모아도 −1.7%로 마이너스다. 이름값과 정반대다.
전략끼리 보면 물가 높던 95개월에 플러스인 건 ADM(+2.6%) 하나뿐이고, 영구 −0.1%, 올웨더 −1.9%, 50:50 −2.7%였다. ‘모든 계절’이라는 이름이 26년치로 넓혀도 인플레 계절에서만은 지켜지지 않는다.
같은 ‘고물가’인데 정반대였던 두 사건
그런데 이 평균에는 함정이 있다. ‘고물가 구간’이라는 한 칸에 성격이 정반대인 사건이 섞여 있다.
| 그 구간의 실질 총수익 | 2007-10 ~ 2008-10 (물가 +3.7%) | 2021-04 ~ 2024-05 (물가 +17.5%) |
|---|---|---|
| ADM | −17.7% | −6.0% |
| 미국주식 | −38.4% | +12.2% |
| 미국+선진국 50:50 | −43.3% | +2.9% |
| 영구 포트폴리오 | −12.6% | −8.8% |
| 올웨더 | −14.9% | −15.2% |
| (참고) 금 | −12.8% | +11.9% |
| (참고) 장기국채 | +0.8% | −37.8% |
앞의 사건은 유가가 밀어 올린 물가에 신용위기가 겹친 구간이라 주식이 무너지고 국채가 버텼다. 뒤의 사건은 40년 만의 물가 급등이었는데 주식이 이기고 국채가 무너졌다. 방향이 정확히 반대다.
그러니까 앞 표에서 ADM이 고물가 1등이었던 건 인플레이션에 강해서가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를 피했기 때문이고, 미국주식이 마이너스였던 것도 물가 탓이 아니라 그 위기 탓이다. 진짜 물가 사건 하나만 떼어 보면 아무 방어 장치가 없는 미국주식이 +12.2%로 1등이다. 국면에 이름을 붙여 평균을 내는 일이 얼마나 쉽게 거짓말을 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직접 해보니 — 예상이 빗나간 세 가지
등수는 안 바뀔 줄 알았다. 모두에게 같은 물가를 나누니 순위는 그대로일 거라 생각했고, CAGR 순위는 실제로 그대로였다. 그런데 샤프와 물속 기간에서는 순위가 갈렸다. 물가는 수익률표에는 공평하지만 위험 지표에는 공평하지 않다.
방어형이 더 크게 다쳤다. 얕게 빠지는 대신 오래 끄는 곡선은 물가에 더 오래 노출된다. “잘 방어한다”는 말이 실질 기준에서는 “느리게 회복한다”와 짝을 이룬다는 걸 이번에 처음 봤다.
안전자산이 안전하지 않았다. 단기국채의 26년 실질 수익률은 연 −0.1%다. 26년 내내 현금성 자산에 넣어둔 돈은 구매력 기준으로 정확히 제자리였다. 안전한 건 잔고의 숫자였지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한계 — 이 시험지엔 진짜 인플레이션이 없다
가장 조심해야 할 대목은 결론이 아니라 시험지다.
| 1947~2026 전체 | 우리 시험지 | 1970~1982 | |
|---|---|---|---|
| 평균 물가 상승률 | 3.5% | 2.6% | 7.8% |
| 최고 상승률 | 14.6% (1980-03) | 9.0% (2022-06) | 14.6% |
| 5%를 넘던 달의 비율 | 21.0% | 7.5% | 81.4% |
우리가 “40년 만의 물가”라고 부른 2022년조차 물가 역사에서는 중간 크기 사건이다. 부트스트랩으로 재본 운의 크기 편에서 “대체 역사를 아무리 지어도 상자에 없는 재료는 안 나온다”고 썼는데 여기서도 똑같다. 물가가 10년 내내 두 자릿수였던 시대를 우리 상자는 갖고 있지 않다.
나머지 한계도 그대로다. 프록시 펀드라 실제 매매 상품이 아니고, 배당 재투자와 편도 0.1% 비용은 넣었지만 세금은 안 넣었다(세금 재채점 편에서 ADM은 세후 11.3%→7.8%로 깎였다). 원자재는 지수라 현금담보 이자가 빠져 실제보다 낮게 잡히는데, 같은 구간 단기국채 수익(연 1.7%)을 얹어 보정하면 −7.1%가 −5.4% 정도가 된다 — 여전히 꼴찌이긴 하나 선진국주식(−5.1%)과 거의 붙는다. 2025년 10월 물가지수는 아예 발표되지 않아(미국 정부 셧다운으로 조사가 끊겼다) 앞뒤 값으로 이어 붙였다. 그리고 여기서 뺀 물가는 미국 물가다.
정리하며
물가를 빼고 26년을 다시 채점해보니 바뀐 것과 안 바뀐 것이 이렇게 갈렸다.
- 안 바뀐 것: 수익률 등수. 물가는 모두에게서 같은 연 2.6~2.7%p를 떼어 간다.
- 바뀐 것: 위험 등수. 잔잔한 전략일수록 효율이 크게 깎이고, 얕지만 오래 끄는 낙폭일수록 회복이 훨씬 길어진다. 영구의 최장 물속 27개월은 실질로 58개월이었다.
- 이름값: 물가 높던 95개월에 구매력을 지킨 자산은 금 하나뿐이었고, 그 금조차 물가 낮을 때 더 벌었다. 원자재는 정반대였다.
- 가장 중요한 것: ‘고물가’라는 한 칸에 성격이 반대인 두 사건이 들어 있었다. 2008년엔 국채가, 2022년엔 주식이 이겼다.
결국 물가는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이미 있던 위험 — 오래 끄는 낙폭 — 에 이자를 붙였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뺀 건 미국 물가다. 그런데 원화로 장을 보는 사람에게는 환율과 한국 물가가 함께 얹힌다. 환율은 위기에 완충재였고 물가는 파도이기만 했는데, 둘을 한꺼번에 씌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언젠가 원화로 사는 사람의 구매력 곡선을 그려보고 싶다.
※ 이 글은 개인의 학습 과정을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투자 권유나 자문이 아닙니다.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백테스트 결과이며 미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