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매도의 값 — 행동 갭을 백테스트로 정량화

계좌가 -20% 빠지면 팔고, 안전해 보이면 다시 사는 '사람'을 백테스트에 넣었다. 공포매도의 값은 연복리 최대 -4.2%p, 가장 크게 다친 건 어중간한 50:50 분산(8년 반을 시장 밖에서). 낙폭이 얕은 영구 포트폴리오는 갭 0 — 좋은 전략의 조건은 수익률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지킬 수 있는 낙폭'이었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매매 시점을 추천하는 글이 아닙니다. 공개된 전략을 실제 데이터로 직접 백테스트하며 공부한 학습 기록입니다.

📚 이 글은 전략 리뷰 실험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지금까지 돌려본 전략을 한눈에 비교한 표를 이 허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열한 번의 백테스트를 돌리는 동안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가정이 하나 있다. 투자자가 규칙을 기계처럼 지킨다는 가정이다. 세금 편을 닫으며 스스로 물었었다 — 계좌가 반토막 나는 동안 태연히 규칙을 지킬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부터가 아니다. 첫 글에 썼듯 나는 반려주식이 반토막 나는 걸 견디지 못해 이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다. 오늘은 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백테스트 안에 넣어본다.

패닉을 규칙으로 바꾸다

사람의 실수를 시뮬레이션하려면 실수도 규칙이 되어야 한다. 행동경제학이 정리해둔 가장 흔한 패턴을 그대로 코드로 옮겼다 — 낙폭이 참을 수 없는 선을 넘으면 전량 매도하고, 마음이 풀려야 돌아온다.

단계 규칙
공포매도 내 계좌의 낙폭이 -20% 를 넘는 달, 월말에 전량 매도 → 단기국채(현금성)로 도피
재진입 ⓐ 달력형 6개월 식힌 뒤 기계적으로 복귀 — “좀 쉬었다 다시 하자”
재진입 ⓑ 회복형 시장(전략 곡선)이 팔기 전 고점을 회복한 걸 확인한 뒤 복귀 — “이제 진짜 안전해 보여서”

회복형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무릎에서 팔았는데, 다시 살 땐 어깨가 아니라 전 고점 위에서 사는 것. 폭락장을 겪은 사람 대부분이 걸어본 길이다.

📌 행동 갭(behavior gap)이란?
전략 자체의 수익률과, 그 전략을 굴린 투자자가 실제로 손에 쥔 수익률의 차이. 겁나서 팔고 안심돼서 사는 타이밍의 어긋남에서 생긴다. 미국 펀드 연구들이 반복 확인한 현상으로, 펀드는 벌었는데 그 펀드 투자자는 못 번 일이 흔하다.

이 패닉 모델을 시리즈의 전략 4종 — 미국주식 단순보유, 미국+선진국 50:50, 영구 포트폴리오, 가속 듀얼 모멘텀(ADM) — 위에 똑같이 얹었다. 낙폭이 깊은 것부터 얕은 것까지의 스펙트럼이다. 나머지 조건은 시리즈 표준(프록시 데이터, 매월 점검, 편도 비용 0.1%, 배당 재투자, 세금 미반영). 영구 포트폴리오의 금 데이터 때문에 시작일은 2001년 2월로 정렬했다 — 앞 편들(2000년 8월 시작)과 숫자가 조금 다른 이유다.

직접 백테스트해봤다

먼저 가장 극적인 미국주식부터. 파란 선이 원칙을 지킨 기계, 빨간 선이 회복형 패닉 투자자다(범례 참고).

미국주식 단순보유의 2001~2026년 자산곡선 — 원칙을 지킨 기계, 6개월 뒤 복귀하는 달력형 패닉, 전 고점 확인 후 복귀하는 회복형 패닉 비교. 붉은 음영은 회복형이 공포매도 후 현금에 머문 구간
(임계 -20%) 연복리(CAGR) 최대낙폭(MDD) 샤프 패닉 횟수 현금 도피
미국주식 · 기계 9.2% -51.0% 0.67
미국주식 · 패닉 회복형 6.7% -23.3% 0.64 3회 95개월
50:50 · 기계 7.9% -54.0% 0.57
50:50 · 패닉 회복형 3.7% -27.8% 0.38 4회 102개월
ADM · 기계 11.2% -24.4% 0.97
ADM · 패닉 회복형 10.1% -23.5% 0.92 1회 21개월
영구 · 기계 7.2% -17.0% 1.03
영구 · 패닉 회복형 7.2% (갭 없음) -17.0% 1.03 0회 0개월

반전 하나 — 갭의 크기를 정한 건 수익률이 아니라 낙폭이었다

전략 4종(ADM, 미국주식, 미국+선진국 50:50, 영구 포트폴리오)의 기계 대비 패닉 회복형 연복리 비교 막대. 50:50이 갭 -4.2%p로 최대, 영구 포트폴리오는 갭 없음

표의 마지막 줄을 보자. 영구 포트폴리오는 패닉 모델을 얹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6년 최대낙폭이 -17%라서, 투자자의 참을성 임계(-20%)에 한 번도 닿지 않은 것이다. 겁 많은 투자자를 넣었는데 겁먹을 일 자체가 없었다.

이게 이 실험의 첫 번째 교훈이다. 시리즈 내내 MDD(최대낙폭)를 ‘위험 지표’ 중 하나로 다뤄왔는데, 사람을 넣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 MDD는 그 전략을 내가 끝까지 지킬 수 있느냐를 가르는 스위치였다. 낙폭이 임계 아래에 머무는 전략은 행동 갭이 0이고, 임계를 뚫는 전략은 수익률표에 없던 세금을 사람이 낸다. 방어력 좋은 전략의 진짜 가치는 위기에서 돈을 지키는 것 이전에, 나를 패닉 임계까지 데려가지 않는 것이었다.

반전 둘 — 가장 크게 다친 건 ‘어중간한 분산’이었다

두 번째로 놀란 건 갭이 제일 큰 전략이다. 미국주식(-2.5%p)이 아니라 미국+선진국 50:50(-4.2%p), 연복리 7.9%가 3.7%로 반 이하가 됐다. 골고루 나눠 담았는데 왜 더 다쳤을까.

사건 로그를 보면 답이 나온다.

50:50 · 회복형의 패닉 매도 복귀 밖에 있던 기간
닷컴 붕괴 2002-07 2004-10 약 2년 3개월
금융위기 2008-09 2013-04 약 4년 7개월
코로나 2020-03 2020-08 5개월
2022 약세장 2022-09 2023-12 1년 3개월

50:50은 낙폭은 주식 못지않게 깊은데(-54%) 회복은 선진국 쪽이 끌어내려 더 느리다. 떨어질 땐 같이 떨어져 패닉을 부르고, 오를 땐 늦게 올라 복귀를 늦춘다. 26년 중 102개월 — 8년 반을 시장 밖에서 보냈다. 반토막 위험을 줄이겠다고 절반만 나눠 담은 어정쩡한 분산은, 패닉 임계도 못 지켜주면서 회복 속도만 잃은 최악의 조합이었다. 분산을 하려면 영구 포트폴리오처럼 낙폭 자체가 임계 아래로 내려가게 확실히 하거나, 아니면 아예 안 하거나다.

반전 셋 — 범인은 파는 손이 아니라 돌아오지 못하는 발이었다

여기까지 보면 “공포매도가 문제”라고 결론 내리기 쉽다. 그런데 달력형(6개월 뒤 기계적 복귀)의 성적이 이상하다. 미국주식에서 달력형은 연복리 11.4%로 오히려 기계(9.2%)보다 나았다. -20%에서 팔고 6개월 뒤 돌아왔더니 2002년 말, 2009년 3월, 2022년 말 — 공교롭게 셋 다 바닥 언저리였던 것이다.

이걸 “패닉 매도 후 6개월 대기가 좋은 전략”으로 읽으면 안 된다. 사건이 세 번뿐인 우연이고, 하락이 6개월보다 길게 늘어지는 장(1970년대식)이었다면 정반대가 됐을 것이다. 진짜 발견은 다른 데 있다 — 같은 공포매도를 하고도, 복귀가 규칙(달력)이면 갭이 사라지거나 뒤집히고, 복귀가 감정(안도감)이면 재앙이 된다. 파는 건 한순간이지만, “이제 안전해 보인다”는 느낌은 시장이 전 고점을 넘어야 오고, 그때는 반등을 통째로 놓친 뒤다. 신호 문턱 편에서 “시간의 지각은 위기마다 세금을 물린다”고 했는데, 감정의 지각은 그보다 훨씬 비쌌다.

📌 손실 회피(loss aversion)란?
같은 크기라도 잃는 아픔이 버는 기쁨보다 두 배쯤 크게 느껴지는 심리. 그래서 사람은 낙폭 앞에서 확률 계산이 아니라 고통 회피로 움직이고, 고통이 사라진 뒤(=가격이 회복된 뒤)에야 돌아온다. 행동 갭의 엔진이다.

참을성의 값 — 임계를 흔들어보니

패닉 임계 -20%는 내 가정일 뿐이다. 사람마다 다르니 -15%부터 -30%까지 흔들어봤다(회복형 기준).

패닉 임계 -15%부터 -30%까지 전략별 행동 갭 곡선. 임계가 얕을수록 갭이 커지고, 낙폭이 얕은 영구 포트폴리오와 ADM은 임계가 깊으면 갭 0

참을성이 -15%로 얕아지면 그 단단하던 영구 포트폴리오조차 갭이 생기고(-0.6%p), ADM도 -1.4%p로 커진다. 반대로 -25%를 참아낼 수 있는 사람에게 ADM의 행동 갭은 0이 된다(MDD -24.4%가 임계 아래라서). 즉 행동 갭은 전략의 낙폭과 나의 임계, 두 곡선이 교차하는지의 문제다. 남에게 좋은 전략이 나에게 나쁜 전략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 전략은 그대로인데 임계가 다르니까.

직접 해보니, 그리고 한계

이번 편은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숫자가 나를 향했다. 나는 -45%를 견디지 못해 규칙 투자로 넘어온 사람이니, 이 실험의 패닉 투자자는 과거의 나다. 그리고 이 결과는 내가 규칙을 코드와 서버에 맡기려는 이유를 처음으로 정량화해줬다 — 자동화는 수익을 더 내는 도구가 아니라, 회복형 재진입이라는 제일 비싼 실수를 물리적으로 못 하게 막는 장치였다.

한계는 분명히 해둔다. 첫째, 이 모델은 ‘공포매도 후 늦은 복귀’ 한 패턴만 다뤘다. 실제 사람은 분할 매도도, 물타기도, 고점 추격매수도 한다 — 갭은 이보다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둘째, 달력형의 우위는 사건 3번짜리 표본의 우연이다. 셋째, 임계·대기기간은 가정이고, 실제 임계는 본인도 폭락을 겪기 전엔 모른다. 넷째, 프록시 데이터·이 기간·이 구성 한정의 결과다.

정리하며

여덟 편에서 세금이라는 현실 마찰을 넣자 순위가 뒤집혔었다. 이번엔 사람이라는 마찰을 넣었더니, 순위가 뒤집히는 정도가 아니라 채점 기준 자체가 바뀌었다. 전략의 수익률은 그 전략을 낙폭 임계 안에서 끝까지 지킬 수 있을 때만 내 것이다. “어떤 전략이 제일 좋은가”라는 시리즈 내내의 질문은, 사람을 넣는 순간 “어떤 전략이면 내가 끝까지 지키는가”로 바뀐다.

그러고 보니 더 앞선 의심이 하나 남았다. 열두 번의 채점 내내 나는 과거 26년치 시험지 한 장으로 점수를 매겨왔다. 밴드 2%니 룩백 1·3·6이니 하는 좋은 숫자들도 다 그 한 장에서 나왔다. 그 시험지를 반으로 접어 앞장으로 고르고 뒷장으로 채점하면, 이 숫자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백테스트 자체를 시험대에 올리는 방법들이 있다고 들었다. 언젠가 이 시리즈의 숫자들을 전부 그 위에 세워보고 싶다.


※ 이 글은 개인의 학습 과정을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 투자 권유나 자문이 아닙니다. 백테스트는 과거 데이터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며, 실제 매매 상품이 아닌 프록시(인덱스펀드) 기준입니다. 패닉 모델은 행동 패턴 하나를 단순화한 교육용 가정입니다. 거래비용은 편도 0.1%를 반영했고 세금·배당 과세는 미반영입니다. 과거의 성과가 미래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steady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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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아니라 데이터와 규칙으로 투자에 접근해보려는 사람입니다. 투자 전문가는 아니고 배우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시중에 알려진 공개 전략을 직접 코드로 백테스트해보고, 나온 숫자를 좋든 나쁘든 그대로 기록합니다. 특히 결과가 좋게 나올수록 한 번 더 의심하려 합니다. 이 블로그가 돌아가는 서버도 직접 구축해 운영하고 있어, 투자 이야기와 함께 서버·개발 이야기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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